단편
시들어 버린 꽃 - 장밋빛 입마춤
비극적 TRPG 폴라리스를 성공적으로 펀딩 후 출간한 이야기와 놀이의 두번째 펀딩인 BL TRPG인 장밋빛 입맞춤이 46%로 마감되어 결국 펀딩에는 실패했습니다. 후원 신청을 하고 트윗도 해보았습니다만(영향력은 없지만;;), 역시 보이는 대로 이렇게 마무리 되고 말았습니다.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서 정확한 원인 분석하는 것은 할 능력도 안되거니와 된다 하더라도 세세한 속사정을 알지도 못하니 불가능 합니다. 그저 나온 결과와 보여진 내용만 가지고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요, 거기에는 국내 TRPG의 작은 시장과 메인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BL이라는 소재도 한 몫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들은 펀딩 도중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펀딩을 시작하기 전부터 있어 왔던 것입니다. 이미 사전에 염두하고 고려되어야 하는 조건들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시작된 펀딩이라면 당연히 이를 감안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뻔이 사정 다 알면서 아무런 조치 없이 성공하길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 입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된 원인을 조금 다른 곳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이미 도출된 결과에 짜맞춘 엉터리 끼워맞추기식의 시덥잖은 이야기이며, 실질적인 원인과는 전혀 다를 수 있기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도 좋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저 펀딩이 종료되었기에 그걸 지켜본 한사람으로의 작은 감상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 Hot Guys Making Out의 일러스트 )
이야기와 놀이의 공식 블로그에서 소개한 원작인 Hot Guys Making Out의 일러스트를 보면 최근의 서양 애니메이션에서도 흔히 보이는 일본풍과 서양풍이 적절히 믹스된 형태의 물건입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그냥 이대로 사용해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어보이네요.
좀 더 이야기 해보자면, 일단 저택 주인과 고아소년이라는 포지션상에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권력관계와 이를 반영한 듯한 캐릭터 디자인, 그 속에서 짐작할 수 있는 서로간의 공수 밸런스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일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BL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있어선 벌써 이 뒷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 수 있어 보이네요.
( △ 이야기와 놀이 공식 블로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변경점 )
Hot Guys Making Out의 한글판인 장밋빛 입맞춤은 어떠한 사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 실정'에 맞게 고쳐졌다고 합니다.
( △ 펀딩 페이지에서 소개한 변경된 일러스트 )
그래서 이게 바뀐 일러스트라고 하는데 어느 부분이 한국 실정이 반영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개된 일러스트만 봐서는 둘을 엮어주고 싶어도 솔직히 썸도 안탈 사이처럼 보입니다.
( △ 장밋빛 입마춤의 펀딩 타이틀 이미지 )
물론 표지가 될 것 같은 이 일러스트를 보자면 그래도 서로 입맞춤은 하긴 하나보다 생각은 들긴 합니다만, 뭔가 예상되는 공수가 반전된 기분도 들어 그만큼 임팩트도 부족하고, 원작의 일러스트를 가져와 비교해 본다면 확연히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쯤에 와서는 '한국 실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솔까말 네이버 웹소설의 일러스트만 보더라도 이보다 더 자극적인데(그렇다고 해서 19금을 만들라는 소리는 아니고), 이건 몸을 사리고 너무 움츠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대상 독자를 상당히 광범위한 일반 대중으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그런분들은 후원은 커녕 구매도 안한다구요!)
( △ 카드캡쳐 체리의 흔한 커플링 )
무수히 많이 쏟아져 나오는 BL 코믹스나 BL 노벨의 일러스트 까지는 안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지 그래도 커플링을 엮어주든 말든 할텐데 공개된 일러스트만으로는 너무 화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 △ 여성향 비주얼 노벨 Tic Tac Toe의 드라마 CD 일러스트 )
BL을 소재로 삼은 TRPG는 그야말로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일지도 모릅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일러스트만 좋았다면 수요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인동맹 TRPG가 TRPG 매니아 뿐만 아니라 원작팬의 구매 수요를 이끌어 온 것처럼 장밋빛 입마춤도 BL을 소재로 삼았다면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을 독자로 삼고 그에 맞춰 마케팅을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예컨데 동인 BL 수요 계층에서 유명한 일러스터를 섭외하고 독자의 니즈에 맞게 잘 포장 후 그쪽 커뮤니티 등에 잘 홍보했다면 TRPG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일단 한번쯤은 관심을 가졌을 테고 펀딩에 보다 추진력을 보태주었을 겁니다. 초동TR이 초동 독자들의 일러스트집이 될 지언정 판매는 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지요.
여하튼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장밋빛 입마춤은 TRPG를 사랑하는 남성독자도 BL을 사랑하는 여성독자도 만족시키지 못한 상당히 애매한 물건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물론 TR을 사랑하시는 여성독자와 BL을 사랑하는 남성 독자들도 계시겠지만 논외로 합니다.) 그래도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후원 신청도 하고 괜한 소리해서 역효과만 날까 싶어 조용히 있었습니다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말 아쉬웠습니다.
비록 펀딩에는 실패하였지만, 이야기와 놀이의 사정이 나아지면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펀딩이 아닌만큼 지금의 계획처럼 크게는 아니지만 보다 자유롭게 나오겠지요. 다시 활짝 꽃틔울 입마춤을 기대하며 부족한 글을 마치겠습니다.